쿰란 Qumran
사해에서 북서쪽으로 위치한 쿰란은 사해 사본을 기록한 에세느파 사람들의 주거 지역이다. 에세느파는 잘 알려 져 있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4색(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 열혈당파, 에세느파) 당파 중 세 번째 종교학파 내지 철학파라 한다.
1951-1956년 예루살렘 성서 연구소 합동 발굴단이 쿰한 지역을 다섯 차례나 발굴하여 에세느파들의 수도원 본부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1947-1956년에 아랍 유목민들과 고고학자들이 쿰란 폐허 근방에 있는 동굴에서 수도자들이 남긴 문헌들을 많이 발견하였다. 이 중에서 4번 동굴에서 사해 필사본을 발견하였다. 쿰란 폐허에서 그 당시의 토기, 물 저장 탱크 등 여러 유적들을 볼 수 있다.
★ 사해사본 또는 쿰란사본
1947년 사해 서쪽지역에서 길 잃은 양을 찾아 헤매던 한 베두인 사람이 이시대 최대의 발견인 그 유명항 사해 두루마리발견했다.
모하메드 에디브라는 이 아랍 양치기는 이 동굴에 마귀가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서워서 도망쳐 버렸다.
다음날 그의 사촌과 같이 다시 동굴에 들어간 양치기는 그 안에서 8개의 항아리를 발견했는데 그 중 몇 개는 뚜껑이 덮여 있었다.
이것을 바깥으로 가져와 금이 들어 있기를 기대하며 열어 보았으나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글자가 쓰여진 가죽뭉치만 있는 것을 보고는 실망해 버렸다. 총 7개의 두루마리가 들어 있었는데, 양치기는 그것을 칼릴칸도라고 하는 시리아 정교인에게 가지고 가서 팔아 넘겼다. 칸도는 그중 4개의 두루마리를 예루살렘에 사는 시리아 정교회 대주교에게 보였다. 대주교는 4개의 두루마리가 히브리어로 쓰여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즉각 사들였으며 두루마리가 매우 귀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미국으로 건너가 이겔야딘이라는 교수에게 25만 달러를 받고 팔았고, 그 후 이스라엘로 옮겨졌다. 이 거래는 야딘의 아버지인 엘리자 슈케닉 교수가 베들레헴에서 나머지 3개의 두루마리를 이미 사들인 후였다. 이 두루마리들은 현재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에 있는 고 문서고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가로 세로 0.3m, 7,.2m인 이사야의 두루마리이다. 이후 요르단 왕국 암만 박물관장 히딩 교수와 성서 연구소장 드보 신부와 많은 베두인 사람들은 두루마리의 높은 가치를 알고 사해 서쪽지역을 뒤지기 시작했다. 1962년 이 지역 30개가 넘는 동굴에서 900개가 넘는 두루마리를 발견하였으며 꿈란에서 9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4호 동굴에서 가장 많은 필사본을 발견하였다. 그 중에는 가죽과 파피루스에 쓰여진 두루마리 이외에 구리에 쓰여진 것도 두 개가 있었다
사해 Dead Sea 사해는 예루살렘에서 약 40킬로미터 위치에 있으며, 길이 75km, 폭 16km, 수면 면적이 900km이고 최대 수심은 380m 정도된다. 지중 해면보다 390m 낮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의 물은 갈릴리 바다에서 흘러 내려오며 다른 곳으로 내려가는 곳은 없다. 또한 사해바다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은 어떤 생물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은 바다, 즉 사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의 바닷물은 세계에서 가장 짠물로 되어 있는데 보통 바닷물의 염분농도가 4-6%인데 비해 무려 5배나 많은 26%의 염분농도를 가지고 있다. 사해는 바닷물보다 7배나 짜며 농도가 높다. 요르단 강을 비롯한 여러 지류들로부터 황과 질소성분을 함유한 수만 톤의 물이 쏟아져 들어와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고 이곳에 고여 증발로 인해 화학물질이 풍부하다. 그리고 요르단 계곡의 폭염에 노출되어 있는 이 고인 물은 계속되는 증발로 인해 화학물질 침전현상이 생겨난다. 이런 풍부한 광물이 포함된 사해는 병의 치료에 독특한 효험을 나타낸다. 피부병,관절염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곳에는 10억 미터톤에 달하는 염화칼슘과 마그네슘, 칼륨 등이 용해되어 있다고 한다. 전혀 몸동작을 하지 않아도 물위에 떠 있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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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빠 Jaffa
요빠는 텔 아비브 남쪽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
도시이다. 구약시대부터 가나인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였던 요빠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하이파 항구가 발전하면서서서히 기능을
잃는다. 주민들도 비좁은 요빠시내을 벗어나 북쪽으로 신시가지 이루며 옮겨간다.
이스라엘 도시중 가장 큰 도시로 이스라엘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기 전까지(1967년) 이곳이 임시 수도였다. 유대인 전통에 따르면 노아의 셋째 아들 야벳(창세 6,10.)이 이 항구를 세웠고, 그 이름을
따 이곳을 야포라 하였다고한다. 기원전 12세기에는 블레셋족의 지배하에 잠시 있다가 단지파의 후손에게 속하게 되었다(여호19,40-46).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립하기 위해서 레바논에서 벌목한 나무를 야포 항구를 통해 운반하였다고 한다.(2역대 2,1-16)야포는 요나의
예언자와 관계있다.' 요나는 하느님의 눈을 피해 다르싯으로 길를 떠나 야포로 내려갔다'(요나1-2장). 현재 이곳은 이스라엘 예술의 중심지로
화랑,보석상,보석가공 상점들이 많다.
17세기에 세워진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성 베드로 수도원있으며,수도원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시몬의 집이라는
조그만 집이 있다.
<관련성서 : 창세기 6.10, 2역대 2.1-16,
사도행전10.6-16>
무두장이 시몬의 집 개인 소유로 평시에는 잠겨 있었다.
베드로 환시기념성당
지중해를 배경으로
2012.12.20-28까지 신심을 한단계 올례주는 알찬 순례였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한발짝 더가까이서 알 수 있는 이 큰 은총을 주셔서...
- 2013. 3월 부활절을 맞이하며 조 스테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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