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스라엘 성지순례

이스라엘 성지순례 (시온산)

바람따라 발길따라 2013. 3. 24. 13:15

 

시온산  Mt.Zion 
시온산은  해발 765m로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산등성이'또는'요새' 곧 성벽으로 둘러싸인 언덕을 뜻하는 것으로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예수님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안에 있었으나, 16세기 중협 오스만 투르크 술레이만 황제가 성벽을 구축할 때 밖으로 제외 하였다. 1948년 6일전쟁 때 이스라엘군과 아랍군이 시온 성문을 두고 격전을 벌어 현재 시온 성문과 성벽에는 그 당시의 수 많은 탄흔이 남아 있다. 시온산은 그리스도교회의 발상지로서 최후의 만찬과 성령강림이 이루어진 곳이요, 제자들과 마리아와 함께 이곳에 여생을 보낸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대인과 회교들도  경배하는 다윗왕의 무덤 있어 이 산을 성스럽게 여기고 있다.

시온산은 원래 예루살렘의 남쪽 언덕(다윗 도성)을 가르키는 이름 이었으나, 다윗이 계약의 궤를 이곳에 옮겨 제단을 쌓은 이래 이 언덕을 야훼의 거룩한 산이라 불리게 되었다.(2사무 6.12-18, 시편 2.6) 그 후 솔로몬이 모리야산에 성전을 세웠기 때문에 시온이라는 명칭은 모리야산을 포함하는 이름이 되었으며, 상징적으로는 거룩한 산, 예루살렘 도시 전체를 의미(시편 48.6, 69.35,  이사 2.3, 60.14)하면서 야회의 도시로서 예루살렘을 강조할 때 사용되어 왔다.

 (관련성서 : 1열왕 8.1,    2사무 5.7)

 

 

최후의 만찬 기념 성당  The Last Supper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던 장소라고 여겨진 곳이다. 비잔틴시대부터 성역화되였던 곳으로 비잔틴시대 기념성당은 614년 페루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12세기 십자군에 의해 2개의 교회가 연결된 형태로 다시 재건되었으나, 회교도들에 의해 파괴되였다.  1176년 아래 경당에서 다윗의 무덤이 자리했던 곳으로도 확인되였다.  1333년 나폴리왕 로베르또와 왕비 산치아가 이 곳을 매입하여 프란치스코회에 봉헌 하였고, 그 후 이곳에 수도원과 고딕 양식의 2층 성전을 지어 "최후만찬 기념 성전"이라 불렀다.

1517년 터키계 회교도들에 의해 그리스도인들이 쫓겨난 이후 근 4백 여년 동안 회교사원으로 사용되다가 1948년 이스라엘 정부에 귀속되어,  현재 지상층에는 다윗 무덤이 자리한 곳이라 하여 유대인들이 자기네 시나고그와 탈무드 학교를 만들었고,   윗층에 있는 성령강림 기념 경당은 폐쇄시켜 버렸며,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만 개방하였다.  건물 안의 종교 행사는 법적으로 금하나 성목요일과 성령강림 대축일에는 그리스도인에게 말씀의 전례만 허용하고 있다.  1936년 기념성당터 바로 옆에 부지를 매입하여 프란치스꼬 수도회에서 기념성당과 수도원 건물을 지었다.  최후의만찬 기념성당과 성모 영면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성역은 시온산 성지의 핵심부분에 속하며,  그리스도인에게는 아주 귀중한 성지이다.
(관련성서 :  마르14.12-31,  요한 13.1-20,   마태 26.17-29,   루카 22.7-38)

 

 

♧ 다윗왕의 무덤   Tomb of King David : 최후의 만찬 기념성당 아래층
이스라엘에서 통곡의 벽(서쪽벽) 다음가는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유대인의 성지 중의 하나인 다윗왕의 무덤은 기념 무덤이지 실제 무덤은 아니다. 1172년 예수살렘을 방문했던 두델라의랍비 벤자민에 의해 다윗왕 무덤이라고 확인되었다. 석실 안에 '다윗왕의 별'을 수놓은 천이 덮인 석관이 있고 그 뒤에는 은을 입힌 토라 통 2개와 등잔, 촛대 등이 놓여 있다. 뒷벽에도 역시 '다윗왕의 별'과 '이스라엘 왕 다윗이 살아서 여기 계시다.'는 글을 수놓은 천이 걸려있다.

 

 

 

닭 울음 성전 St.Peter in Gallicantu

 

베드로의 회개 기념성당은 시온산에서 남동쪽 키드론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여 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끌려가 하룻밤을 보내시고, 가야파의 대 제사장에 집에 끌려와서 첫번째 신문을 받은 곳이다. 그리고 닭이 두번 울기 전에 3번 부인 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 사도베드로가 통곡한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계통 성모승천 수도회에서 이곳을 발굴하여 멧돌, 토굴, 앞마당, 종둘의 거처, 비잔틴 시대 교회 유물 등 여러 유물이 발견되여 이 곳이 가야파의 대 제상 집이 었다고확신하였다. 1931년 성모승천 수도회에서 이곳에 성당을 세우고 현재 관리하고 있다
관련성서 : 루카 22.56-62 (베드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다), 마르 14.53-65, 마태 26.69-75

 

 

 

 

모 영면 기념성당   The Basilica of the Domition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시고 돌아가셨다는 이곳은 시온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고,  최후 만찬 기념성당과 인접에 있다.  1100년 십자군 시대에 성당이 세워졌고,  1219년 회교도가 이 지역을 점령하여 성당을 파괴하였다.  1898년 터키가 부지를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게 넘겼다. 그 후 독일 베제딕도 수도회가 빌헬 황제에게 부지를 기부 받아 1906년부터1910년에 걸처 기념 성당을 완공하였다.  성당안에는 마리아와 아기예수님의 모자이크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고, 바닥에는 삼위일체의 상징과 사도들의 모지이크가 있고, 지하실에는 임종하신 성모마리아의 석상이 있다. 
(관련성서 : 사도행전 1.13-14)

 

 

 

 

통곡의 벽  The Wailing Wal 또는 West wal
성전의 서편에 ‘통곡벽’이라고 하는 성벽이 있다.  유다인들이 성전의 파괴를 마음 아파하면서 큰 소리로 기도하러 이곳에 찾아온다고 하여 불리게 되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야훼의 거처요, 야훼의 현존을 뜻했다. 그래서 이곳은 유대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곳으로 옛 성전의 마지막 유물로 추앙 받은 곳이다.

 솔로몬왕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는 BC587년에 바빌론에 의해 파괴디었다.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BC515년 성전을 재건하였는데 이것이 제2성전이다. 헤로데 대왕이 성전을 대폭 증축 하였는데 유다 전쟁 시(66-70년) 이 성전도 파괴 되었다. 이때 남은 부분이 서쪽의 성벽이다.로마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들러오지 못하도하였으나 비잔틴 시대에는 일년에 단 한번 성전 파괴 기념일에 방문 할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1967년 6일 전쟁 승리 이후 이 근처 아랍인들을 철거시키고 이곳을 유대인들의 집회와 기도 장소로 만들어 버렸다.
 (관련성서 : 1열왕기 8.10-11,     요한 2.20,    1열왕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