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벽과 성문 The Walls of Jerusalem
예루살렘 성벽 : 예루살렘성은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하고 34개의 망루와 함께 높은 성벽으로 병풍처럼 완전히 돌러싸여 있다.
성벽 전체 길이는 4km,높이는 12m이다. 현재의 성벽 모습은 1542년 터키의 슐레이만 1세황제 당시 완전히 재건한 것이다.
현재 출입문으로 이용되고 있는 7개의 성문은 서로 모양이 다르며, 성문 주위에도 서로 다른 조각을 해 놓았다.
성벽위로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통로을 만들어 놓았다. 성벽위를 걸어서 한바퀴 돌아 오는데 약 두시간 걸린다.
자파 성문 : 지중해변 위치한 '자파'또는 요빠와 통하는 문이라 하여 영어로 ‘자파게이트’ 히브리어로 ‘사아르요빠’라 불리며,
아랍어로는 ‘바브 엘 카엘’(하느님의 친구의 문)이라고 불린다.
엘 카엘은 아브라함을 뜻하며, 이 문은 아브라함 문 또는 아브라함 묘가 위치한 헤브론과 통한다하여 '헤브론성문' 이라고 부른다.
시온 성문 : 시온산과 통하는 문이라 해서 ‘시온게이트’, 히브리어로는 ‘사아르 시온’, 아랍어로는 ‘바브 엔 네 비다우드’라 불리린다.
이 문은 시온산에 위치한 다윗왕의 무덤으로 통한다.
오물 성문 : 예루살렘 시내의 모든 오물이 이 성문을 통하여 키드론 계곡과 티로포에온 계곡에 버려졌다고 해서
영어로 ‘덩게이트’, 히브리어로 ‘사아르하아슈포트’, 아랍어로는 ‘바브 엘 마가르 베헤’ 이라 불린다
사자 성문 : 두 마리의 사자가 술레이만 2세의 꿈에 나타나 부서진 성문을 일으켜 세우라고 해서 1540년 보수했고,
그 꿈을 기념하는 뜻에서 사자 성문이라 하였다. 영어로는 ‘라이온 게이트’, 히브리어로 ‘사아르 하라요트’라고 부른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근처에서 스테파노 부제가 치명하였다 하여 ‘성 스테파노 문’ 이라 불리고 있다.
헤로데 성문 : 헤로데 안티파스의 궁전이 이 성문 근처에 있다 하여 ‘헤로데 문’으로 불린다.
유대인들은 '사아르 헤레라힘(꽃로 장식된문)'회교도들은 '바르에즈 사히라(초소의문)'이라불린다.
다마스커스 성문 : 영어로는 ‘다마스커스 게이트’, 히브리어 ‘사아르세켐’, 아랍어 ‘바브 엘 아무드(원주형 기둥 성문)'라고 불린다.
로마시대에는 예루살렘의 중심 성문이였다. 현 성문 중 가장 아름다운 문이다.
뉴 게이트 문 :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의 통로를 위해 1887년에 술탄 압돌하이드가 만든 성문이다.
황금문 : 1530년 터키군에 의해 봉쇄된 성문으로 성전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드나들던 성문이다.
성 안나성당 The Church of St.Anne
스테파노 성문을 지나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있는데, 이자리에서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가 살았고, 마리아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 "마리아 탄생 성당"을 건축하고, 성당 축성일인 9월 8일에 성모탄생 축일을 지내 왔다.
건물은 1140년 십자군이 예루살렘 지역을 관장할 때 세워진 것이다. 십자군이 세운 교회중 현재까지 가장 잘 보존 성당중의 하나로 로마네스크식 양식으로 건축 되었다. 특히 고딕식 둥근 지붕이 아름다우며, 음치가 노래해도 천상의 소리로 들릴 정도로 완벽한 내부공간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마리아와 관련된 성가 3곡을 불렀고, 다른 몇몇 순례자들도 성가를 불렀는데, 그 울림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5세기경 비잔틴 시대에는 마리아 성당이 있었는데, 예루살렘의 주인이 바뀔 때 마다 파괴되었으나, 지하실에는 당시의 모자이크와 기둥머리 조각이 남아 있어, 옛날의 영화를 말해 주고있다. 십자군이 퇴각한 후 이슬람교에서 이 성당을 학교로 사용하였다.
1856년 오스만 투르크가 크림전쟁을 지원해 준 프랑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나폴레옹 3세에게 성당 일원을 기증 하였으며, 그 후 성당은 복원되고 프랑스 카톨릭교회의 백의 신부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성당의 구내에 있는 베짜타 못을 관장하고 있다.
벳자타 못 The Pool of Bethesda
예루살렘 동쪽 성 스테파노 성문안 안나 성당 옆에 있다. "자비의 집(House of Mercy)" 이라는 뜻을 가진 베타자 연못은 키드론 계곡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이 못은 가로 105m,세로60m 로 직사각형 모양이며, 깊이는 7.5m 이다.
이 곳은 예수님 시대에는 성벽 밖에 위치해 있어 성전으로 들어가는 양문 곁에 있던 못으로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맨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낫는다는 소문에 수많은 병자들이 못의 5개 행각에 모여 들였다. 예수님께서 그 중에 38년이나 앓고 있던 병자를 고쳐주신 곳이다. 비잔틴 5세기에 교회가 세워지고 614년 폐루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되고, 다시 십자군 시대에 교회을 세워으나 지금은 못이었다는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관련성서 : 요한 5.1-18)
성전산(모리야산) Temple Mount, Mount Moriah
오늘날 회교 대사원(쿠브베트 에스 삭흐라)과 엘 악사 사원이 자리한 지역이 대성전 자리이다. 아랍인들은 ‘하람 에쉬 사리프’(숭고한 성역)이라 부른다. 이 성역은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6분1에 해당하는 서쪽 길이 4백90미터,동쪽 길이 4백74미터,북쪽 길이 3백21미터,남쪽 길이 2백83미터나 되는 방대한 구역이다.
유대인들과 회교도들의 전통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제사를 지냈던 모라야산이 성역 안에 위치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대성전이 있었던 곳으로, 그리스도교에게는 예수님의 생애와 연관된 곳이고, 회교도에게는 마호멧이 승천한 곳으로 성전산(모리야산)은 3개 일신교로 부터 성역시 되고 있다.
다윗 아들 솔로몬이 이곳에 예루살렘 성전과 궁전을 화려하게 건축하였으나 B.C 587년에 느부갓네살 왕에게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유배된다. 50년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B.C 515년 적은 규모로 재건 한다. 이것을 제2성전이라 하고, 헤로데왕이 제2성전을 B.C. 20년터 A.D.64년까지 원래 크기대로 화려하게 재건하였다. 헤로데가 건축한 이 성전이 예수님이 보았던 성전이다.
그 후 A.D70년 로마 장군 티투수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고 성전터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주피터 신전을 세웠다.
기독교가 공인된 후 콘스탄틴누스 황제에 의해 신전과 석상은 허물어 졌고, 유대인들은 폐허된 성전터을 재건하려하였으나 대 지진으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에게는 성전산을 하느님에게서 저주 받은 곳으로 여겨 이 곳이 돌무더기 뿐인 폐허가 되었다. 지금은 성전의 모습은 찾아 볼수 없고, A.D 638년 회교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마호메트가 성조 아브라함에게 기도를 바쳤다는 바위와 마호멧이 승천했다는 바위에 대회교사원을 세웠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성전과 함께 지성소가 있던 곳으로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발을 디딜수가 없었던 지성소의 신성함을 범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성전산에 출입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길 (수난의길) Via Doloresa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늘 받으신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까지 걸어가신 수난과 죽음의'슬픔의 길'이다.
십자가의 길은 1294년 라칼두스 신부에 의해 처음으로 그 위치가 대충 설정되었다.
안토니아 성(제1,2처)에서 부터 골고타(제10,11,12,13처)까지 그 사이에 일곱개의 장소(제3-9처)를 적절하게 만들어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토록 했었다.
그 후 1540년경 프란치스꼬수도자들에 의해 현재의 십자가의 길이 확정되었다.
수난의 길 14곳 중에서 9곳은 복음서에 나오고 5곳은 역사적으로 전해 오는 곳이다.
처음 두곳은 안토니아 성채에 있으며, 일곱 곳은 이 길위에, 나머지 다섯 곳은 거룩한 무덤 성당안에 있다.
오늘날 행하고 있는 십자가의 길 중에서 복음서에 근거를 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처 : 마태 27,22-26. 제2처 : 요한 19,16-17. 제5처 : 마태 27,32. 제8처 : 루카 23,28-31.
제10처 : 요한 19,23-24. 제11처: 요한 19,18. 제12처: 마태 27,50. 제14처 : 마태 27,58-60.
주의 무덤성당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골고타와 예수님 무덤의 위치에 현재 기념 대 성당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시고 묻히신 곳으로,그리스도의 역사적인 흔적이 담긴 곳이다. 이 성당을 ‘예수의 무덤’ 또는 ‘예수 부활 기념 성당’이라 부르고 있다. 골고타란 뜻은 ‘해골’, ‘머리 없는 두개골’이라는 의미로 라틴어로는 갈바리아라고 말한다.
324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루살렘에 순례를 왔다가 예루살렘 주교 마카리우스로부터 주피터와 비너스 신전이 세워져 있는 곳이 예수의 무덤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헬레나는 황제에게 부탁하여 약 10년 후 이곳에 처음 성당을 세웠는데, 여러 번 전쟁에 의해 파괴되기도 했으나, 1149년 십자군 시대에 들어와서 보수 및 개조가 이루어지고 높은 종탑까지 세워져 현재의 대 성당의 모체가 된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복잡하여 기념 성당 안에 여섯 종파들이 1852년 법률상으로 확정을 지어 종파별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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